잘 확인하지 않는 메일함으로.
언젠간 볼 수도, 혹은 영원히 어둠 속에 갇힌 말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나마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기운내세요.
혼자살이에 꼭 필요한 친구들
TV, 컴퓨터, 아이팟, 비디오 등등.
요즘 나는 라디오와 친구하는 중이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식이다 보니 주파수 맞추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요리조리 채널을 돌리다 귀찮아서 잘 잡히는 주파수만 듣기 시작했는데
왠걸, 기독교 방송이 어쩜 이리 많은지,
혹시 이것도 mb의 음모가 아닐까 잠시 의심.
결국 꾸역꾸역 채널을 맞춰
좋아하는 채널들을 몇 개 찾아놓는다.
주파수가 잘 맞지 않다보니 쇄~ 하는 잡음들이 계속 나온다.
음악을 들으려면 주의집중!
맘 먹기에 따라 턴테이블 레코드 음반 같기도 하다.
띠리리리리~ 쇄~
그래도 나는 이 낡은 소리가 좋다.
6월 19일 집 계약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임대계약. 얼떨떨하기만 하다.
6월 28일 집 청소
고마운 친구들, 그리고 부끄럽던 날
6월 29일 페인트칠
벽을 칠하다. 여전히 이 이사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슬픔이, 쓸쓸함이 가득하다.
7월 2일 침대 도착. 전입신고!
드디어 불광동 주민. 생소한 은평구 생활이다! - 하긴, 성동구도 생소하긴 매 한가지였지.
7월 7일 약소한 이사.
집에 있는 짐을 옮겼다. 승용차 한대로 옮겨지는 짐.
단출한 짐을 놓고, 청소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준비를 마침.
7월 8일 첫날 밤
처음으로 잠을 잤다. 처음엔 집이 많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방을 바라보니
단 한 번도 나만의, 이렇게 넓은 공간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집이, 참 크다. 혼자 지내기엔.
7월 9일 둘째날 밤.
혼란스러운 독립. 내가 정말 나오고 싶었던 것일까. 반항일까.
아직도 나는 낯설기만 하다. 이 생활이. 이 집이.
엄습하는 불안함. 그리고 한없는 그리움.
7월 11일 간단한 요리들.
처음으로 밥을 해먹었다.
이게 과연 될까 의심됐던 밥통은 칙- 하니 기차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린다.
가스가 연결되고, 따뜻한 물을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이 공간이 조금씩 따스하게 느껴진다.
7월 13일 외출 후 귀가
하룻밤만에 집은, 벌레들의 천국이 되었다.
목욕탕엔 미끈~,
민달팽이가 기어다닌다.
으, 축축하고 끈적한 것을 떼어내어 창밖으로 내던진다.
화장실 바닥엔 먼지만한 벌레들이,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우글우글거린다. 지네 비슷하게 생긴 벌레도 있다.
퐁퐁을 풀어 솔로 박박,
아, 집 관리는 어렵다.
7월 14일 어쩌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싱크대 밑에 조그맣게 세탁기를 놓는 공간이 있다.
요즘은 나오지 않는 소형 빌트인 세탁기를 구하느라 중고 시장을 뒤지고 또 뒤져
어렵게 구한 세탁기.
오늘 세탁기를 설치하고 나니(급수 부분 연결을 못해, 사용하진 못하고 있다. 어째 한 번에 되는 게 없다--;;)
덩그렇게 비어 있던 싱크대 밑 공간이 꽉 채워져
이제서야 뭔가 집이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집 앞 마트에 가서 간장, 고춧가루, 소금, 식용유 등등, 기본 식재료를 한가득 사들고
집에 들어오니, 어디선가 귀뚜라미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왔다.
폴짝폴짝.
무서움에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권을 꺼냈다.
침착하자.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움직였다간 저 녀석,
분명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준,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
귀뚜라미는 정확히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끈적한 액체를 내뿜으며 죽어 있는 그것을 또 치우지 못해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다 결국 빗자루로 슬쩍, 앞마당에 내다버렸다.
화장실엔 여전히 큰 벌레, 작은 벌레들로 가득하다.
귀뚜라미도 죽였는데, 이 정도 쯤이야.
눈 찔끔 감고 탁-
살생만 늘어가는구나.
한 가득 봐 온 장으로 늦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오늘은 야채볶음에, 싱싱한 오이, 집에서 가져온 볶은 김과 햄 한 조각.
국물 종류가 없긴 하지만, 제법 맛깔나는 밥상이다.
바닥에 신문지를 척 펴놓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음. 맛있다.
낼은 무얼 만들어먹을까?
아직 손 볼 것이라곤 너무 많은 집이지만, 제법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간다.
제법, 집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
옛날부터 혼자 있는 걸 잘 못 견뎠나보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으면서,
나는 나 스스로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누군가 곁에 있지 않아도 혼자서도,
괜찮다고.
하지만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나는 다시 되돌아가고 말았다.
어쩌면, 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서 또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지도.
부끄러움에,
미안함에,
죄책감에,
슬픔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
이런 구질구질함이 싫다.
그래서인지,
싹뚝,
머리를 잘랐다.
아직까지 머리자르기는 스타일보단 감정 정화에 더 유용하다.
얼떨결에 방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일이 너무 쉽게 풀려버린 것.
하지만 막상 이사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생각보다 내가 이런 이사에 너무 서툴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런, 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난감.
막상 들어가려고 하니 의외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건 정말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