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에 거리두기.
예의 '사건'이라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그 해프닝에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기.
이럴 수가, 하는 배신감.
그럴 리가 없어, 하는 부정.
그리고는 거리두기.
마치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냥,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일을 그르치지 말도록.
'나'라는 장애물...
그럼 그러자.
나는 이런 게 현실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그리움, 애틋함, 그 모든 소중함들을
다시 돌려줄께.
친구가 말했다.
이론하는 사람들, 얘기하는 방식 말이야, 뭔가 쿨한 척 하지만 언제나 같은 말에 같은 방식의 대응만 해, 라고.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너무 쉽게 이건 뭐다, 저건 뭐다 라고 재단해버리지 않고
미묘한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싶어- 라고 했던 생각.
하지만 결국 나는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버린 느낌.
아, 역시 또 발버둥치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
결국 이론도 창작도 예민한 코끝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뼛 속 깊이 반성했다.
이론하는 사람들, 얘기하는 방식 말이야, 뭔가 쿨한 척 하지만 언제나 같은 말에 같은 방식의 대응만 해, 라고.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너무 쉽게 이건 뭐다, 저건 뭐다 라고 재단해버리지 않고
미묘한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싶어- 라고 했던 생각.
하지만 결국 나는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버린 느낌.
아, 역시 또 발버둥치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
결국 이론도 창작도 예민한 코끝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뼛 속 깊이 반성했다.
2002년에 첫 방송되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던 드라마임에도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봤다.
뭐야, 이건. 드라마인 주제에. 어째서 우주가 되는 건데, 게다가 어째서 디스토피아에서부터 시작해버리는 건데...
'지금을 살아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을 살아라.
어쩌면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말이겠지만,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절실했던 명제.
지금을 산다... 지금을 소중하게...
2008년이 된 지금은 근데 뭐야, 이게. 모두 다 없어져버려.
2002년에 그렇게 열심히 지금을 살려고 했는데,
'지금'을 바꿀 수 없다면 <절규>에서처럼 모두 다 없애버려. 파국에서부터 시작해.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을 보고 나서 가슴 속에 한동안 들었던 먹먹함은 그런 것이었다.
표류교실은 파국에서부터 시작해 희망을 보려 했는데
그렇게 안쓰럽게 살아가려 했는데 지금은 안 되는 거잖아.
다시 파국을 희망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게 가슴 아프고
하지만 그게 현실일지도 모르니까 절망에 빠져서도 안 되고...
"意味分からない。”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것도 파국이니까, 가능했던 걸까...
하고 싶은 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지금 떠나면 두 번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나이가 들어간다는 두려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안 되는데,
발걸음은 자꾸 제자리에 머문다.
지금 떠나면 두 번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나이가 들어간다는 두려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안 되는데,
발걸음은 자꾸 제자리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