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행위를 포함하는 단어는 결코 고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그 개념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확정형의 형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에 들은 두 가지의 말.
"성장영화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어느 시기건 성장을 하니까요."
"치유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완전히 치유될 순 없으니까요."
둘 다 맞는 말이지만, 이 두 말엔 '성장'이든 '치유'든 이미 종료된 행위로 정의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아하고, 그 무기력한 사유에 대해서 답답하다.
'완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성장'이나 '치유'는 매일매일 반복되고,
성장했다 퇴화했다 치유되었다 다시 아팠다 하는 순간들이 굴곡처럼 오르내릴 것이다.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성장이나 치유를 그래서 신뢰의 차원으로 치환시켜 "믿지 않아요"라고 말해버리면,
매일매일에 일어나는 이 과정들은 언제나 무시되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사유라는 것은 언제나 간과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의 기쁨과 슬픔이 반복되고,
괜찮아졌다 싶다가도 다시 엎어지고,
성장했다 다시 구차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내 인생의 성장 따윈 없고, 내 고통의 치유 따윈 없다고 쉽게 믿어버리는 바보가 되지는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