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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일기

Diary 2008. 7. 15. 01:41

6월 19일 집 계약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임대계약. 얼떨떨하기만 하다.

6월 28일 집 청소
고마운 친구들, 그리고 부끄럽던 날

6월 29일 페인트칠
벽을 칠하다. 여전히 이 이사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슬픔이, 쓸쓸함이 가득하다.  

7월 2일 침대 도착. 전입신고!
드디어 불광동 주민. 생소한 은평구 생활이다! - 하긴, 성동구도 생소하긴 매 한가지였지.

7월 7일 약소한 이사.
집에 있는 짐을 옮겼다. 승용차 한대로 옮겨지는 짐.
단출한 짐을 놓고, 청소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준비를 마침.


7월 8일 첫날 밤

처음으로 잠을 잤다. 처음엔 집이 많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방을 바라보니
단 한 번도 나만의, 이렇게 넓은 공간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집이, 참 크다. 혼자 지내기엔.


7월 9일 둘째날 밤.

혼란스러운 독립. 내가 정말 나오고 싶었던 것일까. 반항일까.
아직도 나는 낯설기만 하다. 이 생활이. 이 집이.
엄습하는 불안함. 그리고 한없는 그리움.


7월 11일 간단한 요리들.

처음으로 밥을 해먹었다.
이게 과연 될까 의심됐던 밥통은 칙- 하니 기차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린다.
가스가 연결되고, 따뜻한 물을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이 공간이 조금씩 따스하게 느껴진다.


7월 13일 외출 후 귀가

하룻밤만에 집은, 벌레들의 천국이 되었다.
목욕탕엔 미끈~,
민달팽이가 기어다닌다.
으, 축축하고 끈적한 것을 떼어내어 창밖으로 내던진다.
화장실 바닥엔 먼지만한 벌레들이,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우글우글거린다. 지네 비슷하게 생긴 벌레도 있다.
퐁퐁을 풀어 솔로 박박,
아, 집 관리는 어렵다.


7월 14일 어쩌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싱크대 밑에 조그맣게 세탁기를 놓는 공간이 있다.
요즘은 나오지 않는 소형 빌트인 세탁기를 구하느라 중고 시장을 뒤지고 또 뒤져
어렵게 구한 세탁기.
오늘 세탁기를 설치하고 나니(급수 부분 연결을 못해, 사용하진 못하고 있다. 어째 한 번에 되는 게 없다--;;)
덩그렇게 비어 있던 싱크대 밑 공간이 꽉 채워져
이제서야 뭔가 집이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집 앞 마트에 가서 간장, 고춧가루, 소금, 식용유 등등, 기본 식재료를 한가득 사들고
집에 들어오니, 어디선가 귀뚜라미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왔다.
폴짝폴짝.
무서움에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권을 꺼냈다.
침착하자.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움직였다간 저 녀석,
분명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준,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
귀뚜라미는 정확히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끈적한 액체를 내뿜으며 죽어 있는 그것을 또 치우지 못해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다 결국 빗자루로 슬쩍, 앞마당에 내다버렸다.
화장실엔 여전히 큰 벌레, 작은 벌레들로 가득하다.
귀뚜라미도 죽였는데, 이 정도 쯤이야.
눈 찔끔 감고 탁-
살생만 늘어가는구나.
한 가득 봐 온 장으로 늦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오늘은 야채볶음에, 싱싱한 오이, 집에서 가져온 볶은 김과 햄 한 조각.
국물 종류가 없긴 하지만, 제법 맛깔나는 밥상이다.
바닥에 신문지를 척 펴놓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음. 맛있다.
낼은 무얼 만들어먹을까?
아직 손 볼 것이라곤 너무 많은 집이지만, 제법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간다.
제법, 집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peach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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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수리비

Diary 2008. 4. 3. 12:45

며칠만에 집에 들렀더니
엄마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세입자네 보일러가 고장이 났는데 다음 달엔 삼십만원만 더 보내주면 안 될까? 꼭 갚을께."

안쓰럽고 미안함이 역력한 엄마의 말에
"갚을 필요 없어" 퉁명스레 한 마디를 던진다.

잠시 후 엄마가 말없이 딸기를 건넨다.
나는 말없이 딸기를 먹으며 TV를 본다.

공기가 참 무겁더라.

Posted by peach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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