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의 지형은 매일 아침 바뀌고 있다.
전날까지 가정집이었던 곳들이 다음 날이면 어느새 공사 중이다.
기존 주거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시끄러워서 홍대 앞을 떠나거나
비싼 땅값을 주고 눌러앉느니 가게세라도 받겠다거나
혹은 큰 맘 먹고 집을 개조해 직접 장사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조용하고 아담했던 집들은 하나 둘 상가로 바뀌어간다.
대부분은 북까페나 갤러리까페 등의 홍대식 까페들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진 않게, 많은 경우 집을 조금만 개조해 그대로 카페로 활용하기도 한다.
클럽데이는 여전히 성황이지만, 홍대 앞의 명성은 이제 이 까페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에스프레소가 취향이 아니듯
홍대 앞의 까페들도 취향이 아니다.
예전 비하인드가 처음으로 홍대 앞에 들어섰을 때, 예술가들과 사회학, 문화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던
취향의 공동체 같던 까페의 특성은 이제 없다.
만연함이 특별함을 상쇄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홍대는 특정 기호와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불리운다.
모든 이가 원하는 특별함의 소비.
더 이상 취향은 없고, 기호는 죽었고, 모든 이는 키치와 불량을 선호하는 이상한 시대의 대표라면 또 모를까.
전날까지 가정집이었던 곳들이 다음 날이면 어느새 공사 중이다.
기존 주거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시끄러워서 홍대 앞을 떠나거나
비싼 땅값을 주고 눌러앉느니 가게세라도 받겠다거나
혹은 큰 맘 먹고 집을 개조해 직접 장사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조용하고 아담했던 집들은 하나 둘 상가로 바뀌어간다.
대부분은 북까페나 갤러리까페 등의 홍대식 까페들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진 않게, 많은 경우 집을 조금만 개조해 그대로 카페로 활용하기도 한다.
클럽데이는 여전히 성황이지만, 홍대 앞의 명성은 이제 이 까페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에스프레소가 취향이 아니듯
홍대 앞의 까페들도 취향이 아니다.
예전 비하인드가 처음으로 홍대 앞에 들어섰을 때, 예술가들과 사회학, 문화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던
취향의 공동체 같던 까페의 특성은 이제 없다.
만연함이 특별함을 상쇄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홍대는 특정 기호와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불리운다.
모든 이가 원하는 특별함의 소비.
더 이상 취향은 없고, 기호는 죽었고, 모든 이는 키치와 불량을 선호하는 이상한 시대의 대표라면 또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