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한 케이블 연애정보채널에서 팬덤문화 - 특히, 십대들의 팬덤 - 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보내주는 걸 봤다.
이미 본 프로그램이 방송된 적이 있고, 오늘 그 후속편으로 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팬덤 문화에 대해선 적대적이고,
특히 팬덤문화가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거나 팬픽 문화가 성정체성을 왜곡하고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서 "또 이런 방송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프로에서는 이 '위험하고 경박스럽기까지한 십대들의 팬덤'을 자신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는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방송에서 팬들의 인터뷰를 보고 느꼈던 점은 전혀 다른 방향의 긍정태이다.
1. 첫째 팬들은 자신들의 팬덤 문화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
- 이점이 왜 중요하냐면, 팬덤이 문화정체성 안에서 구성되고, 그 내적구성원들이 이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자신들의 발화를 만들어낸다는 점 때문이다.
2. 팬덤문화 안에서 취향의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점. 특히 하위문화의 한 지류가 형성된다는 점. => 팬덤문화 내의 언어는 개별 집단이 공유하는 은어적 특성을 지닌다. 이 은어는 주류언어를 상실한, 혹은 그로부터 배제된 집단들의 일종의 저항적 기능어로서 종종 작용한다는 점을 유의할 것.
3. 이런 맥락에서 팬픽의 생산이나 팬문화 내에서의 취향의 공동체, 팬들 사이의 교류가 자생적으로 생겨난다는 점.
4. 팬픽이 왜곡된 성개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성개념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는 점. => 따라서 중요한 것은 팬픽이라는 현상을 통해 보여지는 문화적 욕망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
그래서 방송관계자가 프로그램이 마련한 토론 이후 팬클럽들 사이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고 좋아했던 것은 말 그대로 자가당착. 그리고 그걸 팬덤 내부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건 팬덤을 더욱 고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십대의 팬덤이 대중음악의 중요한 주체가 되었다는 말 역시, 팬덤이 바탕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을 다 잘라내버린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려하는 게 '십대 팬덤'이라면 언제부터 십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로 존중받았던 적이 있는가? 아, 정말 꼰대같은 훈계들과 언제까지 싸워야 될런지.
- 아파두라이의 표현을 빌자면 이데오스케이프+미디어스케이브와 에스닉스케이프 사이의 현저한 차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