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에는 가부장제의 억압에 극단적으로 시달리는 한 여성의 복수 이야기가 메인 플롯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정말로 감독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아니라 많은 저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나중에 찾아보니 그랬다.) 방관자 쪽에 있었다.
하지만, 이 방관자가 누구이냐가 이 영화에서는 몹시 문제적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복남의 어린시절 서울 친구로 등장하는 이 방관자는 도시에 사는 싱글녀이다. 그녀는 제법 사는 것 같고,(그녀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이나, 죽은 외할아버지의 집을 처분하지 않고 사는 것 등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은행원이라는 안정된 직장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는 폭행 사건을 목격했지만, 휘말리고 싶지 않아 성의없는 증언을 한다. 이는 후반부에서 복남의 딸의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다시 한 번 부인하는 데서 반복된다. 그래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복남은 결국 살인의 화신이 되고 만다.
이 영화의 장르적 짜임새의 불충실함(특히, 후반부의)은 논외로 차치하고서, 이 영화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젠더적으로 좀 더 정교하게 논의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 비판받아야 한다.
우선 영화의 이야기는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인 가정 폭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영화는 사람이 몇 살지 않는 섬마을에, 섬 밖으로는 나가본 적 없는 복남을 위치시킨다. 아마, 그녀의 부모나 다른 가족 관계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복남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장치였으리라. 그래서 복남의 플롯만 전개된다면, 6,70년대에 자주 등장했던 여귀물의 고어버전 쯤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하나의 플롯을 덧댐으로써, 방관하고 있었던 '그녀'를 비판한다. (이것은 이미 <오로라 공주>에서 시도되었었던 것이므로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 복남에겐 도움을 청할 사람이 '그녀'밖에 없었고, 복남은 '그녀'에게 죽어라 구원의 편지와 전화를 건넸지만, '그녀'는 복남을 귀찮아했다.
무엇보다 문제적인 건 그녀의 '이기적인' 태도였다. 그녀는 은행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할머니의 대출을 거부한다. 다른 회사 동료가 해결한 걸 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였겠지만, 그녀는 귀찮음에 해결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녀가 원리 원칙을 잘 따르기 때문으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으며, 그녀는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녔음에 분명하다.) 할머니와의 말다툼에서 그녀는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여 주변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히스테리적 반응 때문에 동료의 뺨을 때린 후 회사를 잠시 떠나 섬에 들어가게 된다. 즉, 그녀의 성격이 히스테리적이라는 정보가 하나 관객에게 추가된다. 그런 그녀가 복남의 진짜 가해자들보다 더 문제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그래서 관찰자이고 관객인 그녀. 그녀만이 죄의식에 사로잡힌다고 햇을 때, 그래서 그녀의 위치에 놓여진 관객이 죄의식을 느낀다고 했을 때, 무엇이 정말 문제적인가? 진짜 가해자들은 죽음으로써 사건에서 자유로워졌다. (복수의 완성형. 그들은 처벌받았고 그래서 더 이상 위협의 대상도 원망의 대상도 아니다.)
유일하게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 여성.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극히 도시적이며, 지극히 현대적인 이 여성과 지극히 촌스럽고, 지극히 자애로우며, 지극히 전근대적인 이 여성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후자 쪽이다. 가부장제에서 고통받았지만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모성을 다한 복남은 살인마로 변하지만, 서사 구조상에서 용서받는다면, 그 친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물론 관객은 그녀의 위치에 놓여지기 때문에 살아남았음에 안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의 복수를 다루었던 6,70년대 호러물이나 살인(혹은 유기)에서 불특정 다수의 방관자의 위치를 사회구조적으로 문제제기했던 <오로라 공주>와는 달리 이기적이고 잘 나가는 현대 도시의 싱글녀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증으로 읽힌다.
힘든 사람이 있어도 도와주지 않는 그녀. 폭행사건을 보아도 침묵하는 그녀. 복남의 시고모의 말처럼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시골와서 쉬겠다고 내려와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젠더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방관자가 누구이냐가 이 영화에서는 몹시 문제적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복남의 어린시절 서울 친구로 등장하는 이 방관자는 도시에 사는 싱글녀이다. 그녀는 제법 사는 것 같고,(그녀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이나, 죽은 외할아버지의 집을 처분하지 않고 사는 것 등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은행원이라는 안정된 직장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는 폭행 사건을 목격했지만, 휘말리고 싶지 않아 성의없는 증언을 한다. 이는 후반부에서 복남의 딸의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다시 한 번 부인하는 데서 반복된다. 그래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복남은 결국 살인의 화신이 되고 만다.
이 영화의 장르적 짜임새의 불충실함(특히, 후반부의)은 논외로 차치하고서, 이 영화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젠더적으로 좀 더 정교하게 논의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 비판받아야 한다.
우선 영화의 이야기는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극단적인 가정 폭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영화는 사람이 몇 살지 않는 섬마을에, 섬 밖으로는 나가본 적 없는 복남을 위치시킨다. 아마, 그녀의 부모나 다른 가족 관계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복남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장치였으리라. 그래서 복남의 플롯만 전개된다면, 6,70년대에 자주 등장했던 여귀물의 고어버전 쯤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하나의 플롯을 덧댐으로써, 방관하고 있었던 '그녀'를 비판한다. (이것은 이미 <오로라 공주>에서 시도되었었던 것이므로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 복남에겐 도움을 청할 사람이 '그녀'밖에 없었고, 복남은 '그녀'에게 죽어라 구원의 편지와 전화를 건넸지만, '그녀'는 복남을 귀찮아했다.
무엇보다 문제적인 건 그녀의 '이기적인' 태도였다. 그녀는 은행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할머니의 대출을 거부한다. 다른 회사 동료가 해결한 걸 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였겠지만, 그녀는 귀찮음에 해결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녀가 원리 원칙을 잘 따르기 때문으로는 절대로 보이지 않으며, 그녀는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녔음에 분명하다.) 할머니와의 말다툼에서 그녀는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여 주변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히스테리적 반응 때문에 동료의 뺨을 때린 후 회사를 잠시 떠나 섬에 들어가게 된다. 즉, 그녀의 성격이 히스테리적이라는 정보가 하나 관객에게 추가된다. 그런 그녀가 복남의 진짜 가해자들보다 더 문제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그래서 관찰자이고 관객인 그녀. 그녀만이 죄의식에 사로잡힌다고 햇을 때, 그래서 그녀의 위치에 놓여진 관객이 죄의식을 느낀다고 했을 때, 무엇이 정말 문제적인가? 진짜 가해자들은 죽음으로써 사건에서 자유로워졌다. (복수의 완성형. 그들은 처벌받았고 그래서 더 이상 위협의 대상도 원망의 대상도 아니다.)
유일하게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 여성.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극히 도시적이며, 지극히 현대적인 이 여성과 지극히 촌스럽고, 지극히 자애로우며, 지극히 전근대적인 이 여성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후자 쪽이다. 가부장제에서 고통받았지만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모성을 다한 복남은 살인마로 변하지만, 서사 구조상에서 용서받는다면, 그 친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물론 관객은 그녀의 위치에 놓여지기 때문에 살아남았음에 안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의 복수를 다루었던 6,70년대 호러물이나 살인(혹은 유기)에서 불특정 다수의 방관자의 위치를 사회구조적으로 문제제기했던 <오로라 공주>와는 달리 이기적이고 잘 나가는 현대 도시의 싱글녀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증으로 읽힌다.
힘든 사람이 있어도 도와주지 않는 그녀. 폭행사건을 보아도 침묵하는 그녀. 복남의 시고모의 말처럼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시골와서 쉬겠다고 내려와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젠더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