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와 '사랑니'에서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분명 있었다. 그랬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 영화 '모던보이'에서는 정지우 감독이 가장 붙들고 싶었던게 무엇이었을까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 모르겠다. 해피엔드에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던 깊이, 사랑니에서 서른의 인영이 꿈꾸던 섬세한 감정의 깊이는 이 영화에서 표면의 디테일에 맴돌뿐 안으로 파고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몇몇 감독들이 그런 전철을 밟았던 것처럼 스펙타클에 대한 과시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정지우 감독은 예쁜 화면을 뽑아내기 위해 장식적인 화면으로 덕지덕지 채워넣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분명 이 영화가 그런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시적이거나 과욕적인 화면은 아니다. )
어쩌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실패해버린 것일까? 동시대적 감수성을 절대 놓지 않았던 정지우 감독이 모던보이를 선택했을 땐 시대의 암울함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과거엔 분명 존재했겠지만, 지금 세대에게 일제 시대가 암울한 트라우마일리 없다. '거짓 트라우마, 혹은 상실하지 않았음에도 상실했다고 믿는 '가짜 향수'가 왜 하필 이 영화에 다시 등장하는 것일까? 그리고 영화 속 수많은 디테일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단지 표면일 뿐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던보이와 함께 떠올랐다. 며칠간의 난감한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