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eye
3D, 일상의 분리
peachbox
2010. 12. 3. 06:00
사람들은 <아바타>의 성공 이후 3D 미디어(TV와 영화를 막론하고)가 일상적 공간"까지" 이제 잠식한다고 말을 한다. 소니는 제일 먼저 3D 텔레비전 시장을 잠식했고,(이는 제임스 카메론을 비롯한 '예술가'들과 문화자본, 기술자본의 합작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삼성과 엘지는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 추세다. 이제 곧 사람들은 종종 거실 쇼파에 기댄 채 검은 안경을 쓰고 3D 영상을 관람하다 곯아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3D가 일상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드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3D 안경을 쓰고 잠이 드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당신은 3D 안경을 쓴 채로, TV를 보다가 요리를 하고 집 밖으로 나가 장을 보고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것은 우리가 기존의 아날로그 혹은 디지털 TV를 우리의 눈으로 관람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히려 "그때"는 우리는 일상의 삶을 거스르지 않고서도 TV를 보는 것이 가능했다. TV를 보다가 잠깐 전화를 받고 다시 TV로 돌아오는 non-stop의 행위들 말이다. 하지만 3D 안경은 관람과 그 외의 행위(아마도 '현실세계'라고 유추할 수 있는 것)와의 완벽한 단절을 요구한다. 3D 영화가 종종 테마파크에서 상영되었던 것처럼 (이것이 상영되는 극장은 '귀신의 집'과 유사한데, 둘 다 완전히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가 "환상"을 체험한 뒤 기진맥진해진 채 다시 현실 세계로 빠져"나온다." ) 그것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break), 우리를 어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래서 3D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우리의 일상과 분리되는 경험이다.
다시 스윗홈의 거실로 돌아와보자. 일상의 침범은 그 검은 안경을 쓰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검은 안경은 좋은(선명한) 이미지와 나쁜(흐릿한) 이미지를 구분하고 걸러주는 일종의 조리개이다. 여기에서 좋은 이미지는 3D 영상이고, 나쁜 이미지는 그 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다. 그러니 3D 영화가 자랑하는 리얼리티는 어불성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일상의 지각은 3D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D는 당분간은 지속적인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일상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와 일상경험과 매체시각경험을 분리해내고 말 3D. 이것은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침투해들어온 것과 비교할 만하다. 대중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은 이제 대화 중에도 입과 귀는 서로를 향해 열려 있으되, 눈만큼은 스크린에서 떼지 않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만들어내었다. 귀와 입이 열려있다고 해도 머리가 열려 있는 것이 이 대화일지 화면 속 영상일지는 의심스럽다. 대화 상대가 온전히 대화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만약 대화 참여자들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행동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얼핏보면 그래서 스마트폰이 주체의 일상생활화 되어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마트폰 유저들은 기존의 일상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3D 미디어와 스마트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개인을 개인의 일상생활 경험으로부터, 사회적으로 기획된 삶으로부터 개인들을 계속해서 분리시켜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통합의 감각보다 분리의 감각이 더욱 중요하다. 대신 미디어 안에서의 내적 통합이 중요해진다. 우리의 두 눈은 분리된 두 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해내야 하고, 한 스크린 위에 놓여있는 트위터 어플리케이션과 내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은 결코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필드 위에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개인의 감각 경험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혹은 그대로일까? 개인에게 분리와 통합의 감각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거나 간과해버릴 수 없는 문제다.
여기에서 글을 마치고 싶진 않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좀 더 고민한 후에 후기를 추가하겠음.
그러나 의문이 드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3D 안경을 쓰고 잠이 드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당신은 3D 안경을 쓴 채로, TV를 보다가 요리를 하고 집 밖으로 나가 장을 보고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것은 우리가 기존의 아날로그 혹은 디지털 TV를 우리의 눈으로 관람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히려 "그때"는 우리는 일상의 삶을 거스르지 않고서도 TV를 보는 것이 가능했다. TV를 보다가 잠깐 전화를 받고 다시 TV로 돌아오는 non-stop의 행위들 말이다. 하지만 3D 안경은 관람과 그 외의 행위(아마도 '현실세계'라고 유추할 수 있는 것)와의 완벽한 단절을 요구한다. 3D 영화가 종종 테마파크에서 상영되었던 것처럼 (이것이 상영되는 극장은 '귀신의 집'과 유사한데, 둘 다 완전히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어두컴컴한 곳으로 들어가 "환상"을 체험한 뒤 기진맥진해진 채 다시 현실 세계로 빠져"나온다." ) 그것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break), 우리를 어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래서 3D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우리의 일상과 분리되는 경험이다.
다시 스윗홈의 거실로 돌아와보자. 일상의 침범은 그 검은 안경을 쓰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검은 안경은 좋은(선명한) 이미지와 나쁜(흐릿한) 이미지를 구분하고 걸러주는 일종의 조리개이다. 여기에서 좋은 이미지는 3D 영상이고, 나쁜 이미지는 그 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다. 그러니 3D 영화가 자랑하는 리얼리티는 어불성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일상의 지각은 3D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D는 당분간은 지속적인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일상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와 일상경험과 매체시각경험을 분리해내고 말 3D. 이것은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침투해들어온 것과 비교할 만하다. 대중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은 이제 대화 중에도 입과 귀는 서로를 향해 열려 있으되, 눈만큼은 스크린에서 떼지 않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만들어내었다. 귀와 입이 열려있다고 해도 머리가 열려 있는 것이 이 대화일지 화면 속 영상일지는 의심스럽다. 대화 상대가 온전히 대화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만약 대화 참여자들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행동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얼핏보면 그래서 스마트폰이 주체의 일상생활화 되어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마트폰 유저들은 기존의 일상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3D 미디어와 스마트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개인을 개인의 일상생활 경험으로부터, 사회적으로 기획된 삶으로부터 개인들을 계속해서 분리시켜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통합의 감각보다 분리의 감각이 더욱 중요하다. 대신 미디어 안에서의 내적 통합이 중요해진다. 우리의 두 눈은 분리된 두 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해내야 하고, 한 스크린 위에 놓여있는 트위터 어플리케이션과 내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은 결코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필드 위에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개인의 감각 경험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혹은 그대로일까? 개인에게 분리와 통합의 감각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거나 간과해버릴 수 없는 문제다.
여기에서 글을 마치고 싶진 않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좀 더 고민한 후에 후기를 추가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