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hbox 2009. 5. 21. 15:53
마더 시사회가 끝난 뒤 의견은 분분하였다. 지지와 반대도 나뉘며, 실패하는 모성이냐, 회피되는 기억이냐도 관건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 영화를 지지할 수 없다.
기억의 코드로 읽기에 영화에서 김혜자는 필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헛점이 많다.
김혜자의 모성의 수행성은 거듭 실패하고, 결국 미쳐 날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상한 방식의 파국) 즉, 김혜자를 제외한 모든 세계는 '상식'으로 돌아가지만 김혜자는 그 상식을 뒤엎고자 아둥바둥한다. 그녀는 형사보다 더 집요하게 사건의 내부, 혹은 이 마을 안의 상식 체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결국 그녀는 혼자 모든 것을 조사하려 하고, 파고들고, 혼자서만 비밀을 들으려 하고, 언제나 '혼자인 채로' 남아 있게 되고, 결국 그녀가 들어가려고 했던 내부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그녀가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매개체는 아들 '도준'이다. 도준은 어리숙하고 덜떨어지지만, 도준이라는 존재는 예의 그 필드 안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동화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도준을 부여잡고 있는 도준 엄마는 도준이 그 엄마를 거부하는 순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영화 안에서는 빈 시점이 많고, 도준 엄마는 훔쳐보는 시선을 갖거나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에서의 숭고를 믿는다. 이유없이. 남들이 이해할 수 없어도 도준 엄마는 도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성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모성은 집요한 광기와 집착의 혐의를 가지게 되며, 결국은 그 광기로 폭주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모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니며, 대안적이거나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영화 자체가 그리고 있는 것이 모성이 아닌 뒤틀린 모성이며,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모성을 뒤엎고 재해석하는 방식이 아니라 뒤틀린 모성의 공포를 다시 한 번 불러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이후 추가.